(복지관이 만난 사람들) 꿈 많은 소녀, 그리고 강한 엄마 임석영 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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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9-25 11:48 조회수3,457본문
**복지관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복지관 이용자, 견학자, 지역 주민, 어르신, 아이, 부모, 청소년 등등 말이죠. 이렇듯 복지관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복지관에서 발간하는 관보 '성지'는 만나고, 또 이 분들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복지관 홈페이지를 통해서 다시금 목소리를 전합니다.
흔들리며 피워낸 작은 꽃
- 꿈 많은 소녀, 그리고 강한 엄마 임석영 씨 인터뷰
인터뷰_박민선(성지 편집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도종환 시인의 한 문구가 오늘 만난 임석영 씨의 인생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 복지관과 오랜 동행을 해온 그녀가 아주 평범한, 그러나 쉽지만은 않았던 ‘흔들림’에 스스로 아름답게 피워낸 작은 꽃의 이야기를 전한다.
경상북도 상주의 작은 시골마을은 임석영 씨의 꿈이 시작된 곳이다. 언제나 집 밖의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성공’을 꿈 꿔온 소녀는 처음부터 자신감을 가지고 태어난 듯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집에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장애가 심했던 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사실이 슬프지 않았어요.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언제나 부모님의 도움 없이 나 혼자 스스로 살고 싶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꿈꿔왔어요.”
장애가 있어 안 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시골 소녀. 꿈은 노력하면 장애와 상관없이 공평히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그녀의 순수한 바람이 묻어나는 지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본다.
마음만 먹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
늘 집 밖의 더 넓은 세상에 관심이 많았던 어느 날 그녀에게 처음으로 날개를 달아 준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라디오에 우연히 써서 보낸 그녀의 사연이 라디오에 소개가 된 것이다.
“라디오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가 제 이야기를 담아 보냈어요. 담담히 저의 현재 모습을 전하고 제가 바라는 꿈을 이야기 했어요. 그 이야기가 라디오에 소개된 이후로 전국 각지에서 편지가 하루에 한보따리씩 왔어요. 간호사, 교수, 대학생 언니오빠들 등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감동받았다며 응원의 말을 전해왔어요. 그리고 집으로 찾아오는 분들도 있었어요. 덕분에 시골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어요. 도시에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기회들이 있다는 것을요.”
‘라디오 사건’ 이후 임석영 씨는 마음먹은 대로 기회를 만들어 갔다.
사연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의 도움으로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서울에서 2주간의 취업교육에 참가할 수 있었고, 교육에 참가했을 당시 알게 된 안동의 한 자립작업장에 ‘돈을 벌어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고 싶은 꿈’을 담아 직접 손편지를 적어 보낸 끝에 그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나전칠기를 배울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넓은 세상에서의 성공과 자립을 꿈 꿔온 그녀는 계속해서 기회를 만들어 갔다. 2년 후 용인의 한 방위산업체에서 장애인 고용소식을 접했고, 낯선 도시에서의 도전은 다시 성공했다. 열일곱 살 생애 첫 월급으로 받은 18만원. 그녀는 그 돈을 부지런히 모아 2년 뒤 기숙사를 나와 전세방을 얻었다.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독립. 홀러서기의 꿈을 이룬 것이다.
넘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하나가 아닌 둘, 혼자가 아닌 ‘가정’을 꿈 꾸는 그녀에게도 힘겨운 시간이 있었다.
스물 셋,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결심하고 정착한 서울 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힘겨웠다.
지하셋방은 휠체어를 타는 임석영 씨의 외출을 더욱 어렵게 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빛을 보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딸을 출산한 후 갑자기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을 때 임석영 씨는 깊은 절망을 느끼기도 했다. ‘혼자’서는 할 수 있었지만 ‘엄마’로서 제대로 지킬 수 없었던 아이들을 바라보며 막막했던 그때 우리 복지관과의 오랜 동행을 시작했다. 또다시 ‘기회’가 된 복지관을 통해 산후조리와 가사지원 서비스, 그리고 후원금도 받을 수 있었다. 서서히 생활이 나아졌고, 엄마의 손길에 의존했던 아이들은 엄마의 보호자로, 친구로 그늘 없이 성장했다.
그녀에게 삶은 늘 살아가야 할 이유와 그만한 힘이 있었다.
나는 항상 매 순간이 절박하다. 그랬기 때문에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다.
임석영 씨는 요즘 복지관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취미생활을 즐기랴, 세 아이의 ‘엄마’로서 한 가정의 주부로서 일하랴 늘 바쁘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힘든 일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 독립적이고 당당한 엄마이기를 바란다.
임석영 씨는 자신이 살아왔던 것처럼 늘 아이들에게 ‘열심히, 절박하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면 다 이루어진다.’ 고 이야기해 준다.
그녀는 또한 우리에게 말한다.
“나는 항상 매순간이 절박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더 많은 일들을 해내야 했고, 이룰 수 있었어요. 이제는 살아가는게 조금도 두렵지 않아요.”
인터뷰를 마치며 성지 독자들과 함께 어떤 절실함으로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꿈꾸고 있는지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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