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 장애인들의 고단한 삶(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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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4-04-09 00:00 조회수4,153본문
月90만원 수입에 10평서 온가족 칼잠 자도
집없는 장애인 2명에 “같이 살자” 손내밀어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장인태(張仁太·38), 김순정(金順貞·여·34) 부부의 집은 서울 강동구 고덕동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지하철을 내려서도 10분 이상을 걸어야 하는 외진 곳이다. 그나마 볕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 산다.
조그마한 방 두 개와 화장실, 부엌 겸 마루가 있는 10평 남짓한 공간. 문턱마다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도록 경사진 받침대가 설치돼 있어 실내가 더욱 좁게 느껴진다. 이곳이 장씨 부부를 포함해 모두 6명의 식구가 살고 있는 보금자리다.
이 집 안방의 주인은 아내 김씨가 아니라 남편 장씨다. 장씨는 집에서도 몸을 움직이기가 힘든 중증 장애인이라 거의 안방에 머문다. 어릴 적 뇌성마비를 앓았고 6년 전에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2년 전에는 목디스크 수술까지 받았다.
아내 김씨 역시 두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두 팔에 의지해 방과 화장실을 오가고, 밖으로 나갈 때는 특수 제작된 휠체어를 사용한다. 다행히 언어 능력은 손상되지 않아 거의 정상인처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두 사람은 장애인이지만,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건주(8)와 놀이방에 다니는 딸 효선(6)이가 정상인으로 태어났다. 부부는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고 있다. 건주가 태어난 이후 몇 년간 부부는 ‘아이가 혹시 이상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하루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두 아이는 밖에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건주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다.
이들 가족은 두 식구를 더 데리고 있다. 장씨 부부처럼 1급 지체장애인인 이만섭(42)씨와 오갈 데가 없어 함께 살게 된 장순영(여·48)씨다. 장씨 부부는 같은 처지의 장애인과 불우이웃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 각각 7년 전과 1년 전 우연히 알게 된 만섭씨와 순영씨를 자기 집에 들어와 살도록 했다. 장씨가 그들을 만났을 때 두 사람 모두 갈 곳 없는 처지였다.
두 사람은 자신의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장씨를 보며 “그럴 순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그의 정성에 감동해 한 식구가 됐다. 만섭씨는 계란 행상을 하며 집안살림에 도움을 주고, 순영씨는 몸이 불편한 이들 가족의 손발이 되어준다. 김씨는 “그동안 우리 집에 머물다 간 장애인이 10명은 넘을 것”이라며 “남편은 자기 몸도 불편하면서 다른 장애인을 도우려는 마음이 유별나다”고 말했다.
집이 좁아 밤에는 방과 마루에 6명의 식구가 나누어 잔다. 장씨 부부는 효선이를 데리고 안방에, 건주는 만섭씨와 함께 작은 방에, 순영씨는 마루에 잠자리를 편다. 아내 김씨는 “그래도 옛날에 살던 집보다 편해서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씨 가족의 이런 ‘행복’도 곧 끝나게 된다. 지난 4년간 정들었던 이 집을 당장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동안 서울시에서 빌려준 중증장애인 전세자금 2500만원으로 이 집 전세금을 충당해왔다.
하지만 본래 만기 4년인 이 자금을 8년이나 빌려 쓴 데다, 서울시측도 ‘다른 장애인들도 많이 기다리는데 더 이상 사정을 봐주기 어렵다’고 알려와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
김씨는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어 막막할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돈도 문제이지만, 두 사람은 중증 지체 장애인이라 다른 집으로 옮겨가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4년 전 살던 집에선 화장실이 현관문 밖 계단 위에 있는 바람에, 볼 일 보러 나갈 때마다 사력을 다해야했다. 어디 가서 지금처럼 문턱마다 휠체어 경사대를 설치할 수 있으랴.
이들의 한 달 수입은 정부의 생계 보조비 88만6000원. 같이 사는 만섭씨가 계란 행상을 해 20만원을 보태지만, 전세금 마련은 꿈만 같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한 달에 60만원씩, 장씨가 IMF 외환위기 때 과일행상을 하다 지게 된 빚을 갚는 데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장씨는 97년 초부터 2년간 서울 고덕동에서 과일행상을 했다. 하지만 98년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석 달간 병원에 입원했고, 돈을 빌려 구입한 과일들은 고금리와 불황 속에 빚만 키우는 애물단지가 됐다. 장씨는 병원에서 퇴원한 후 뻥튀기 장사도 해보고 군고구마 리어커도 끌어봤다.
하지만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고 후유증으로 디스크만 생겼을 뿐이었다. 아내 김씨 역시 사방으로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허사였다. 김씨는 “옷감 마무리나 간단한 금속 세공이라도 해 보려고 이리저리 수소문해도 소득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씨는 지금도 여전히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젓가락질조차 힘든 그이지만 “집사람한테만큼은 일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했다. 김씨 역시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어릴 적 우리 엄마가 나를 버스에 버리는 바람에, 혼자 펑펑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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