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 태동과 시작 복지관 시작의 순간은 우리나라 장애인종합복지관 역사의 시작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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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8-18 16:01 조회수2,921본문
어느 장애인복지기관이든 시작이 있고, 그 시작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도 시작의 움직임이 있었고. 역사적인 첫 날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개관 35주년을 맞이한 올해 다시 한 번 그 때를 돌아봅니다. 2003년에 발간한 '20년사'를 기본으로 하여 그 사이에 새롭게 찾은 신문기사, 자료, 인터뷰 내용으로 보완하였습니다. 출발선에 서기까지의 여정을 다시 봅니다. 그 때의 초심을 다시 봅니다 - 2017.8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자료 수집. 내용 정리 : 기획홍보실 박재훈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태동과 시작,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시작의 순간은 우리나라 장애인종합복지관 역사의 시작과 같습니다.
복지관 설립의 사회적, 제도적 배경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이하 복지관) 태동은 1977년 제32차 유엔총회에서 1981년을 ‘세계장애인의 해’로 정하면서 시작한다. 유엔은 ‘완전참여와 평등’을 주제로 선포하였고, ‘세계 장애인의 해 행동계획’을 채택하여 각국이 이를 위해 전력할 것을 권유했다.
자료 수집. 내용 정리 : 기획홍보실 박재훈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태동과 시작,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시작의 순간은 우리나라 장애인종합복지관 역사의 시작과 같습니다.
복지관 설립의 사회적, 제도적 배경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이하 복지관) 태동은 1977년 제32차 유엔총회에서 1981년을 ‘세계장애인의 해’로 정하면서 시작한다. 유엔은 ‘완전참여와 평등’을 주제로 선포하였고, ‘세계 장애인의 해 행동계획’을 채택하여 각국이 이를 위해 전력할 것을 권유했다.
우리나라는 1981년 세계 장애인의 해를 맞이하면서 ‘심진장애자복지법’을 제정하고, 당시 보건사회부에 장애인복지를 담당하는 재활과가, 서울시에는 계가 신설되는 등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서울시는 당시 명일동 5만 평을 매입하여 직업훈련원, 양로원. 장애인복지시설을 건립하기로 계획하면서 복지관 대지를 마련한다.
기사 내용 : 명일동 5만평 매입 사회복지관 부지로 2979.9.22 동아일보 (출처_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동아일보)
서울시는 22일 강남구 명일동 산42의13 시립직업훈련원 부근 대지 5만여 평을 매입, 앞으로 건설될 대규모 종합사회복지관 부지로 사용키로 했다
기사 내용 : 명일동 5만평 매입 사회복지관 부지로 2979.9.22 동아일보 (출처_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동아일보)
서울시는 22일 강남구 명일동 산42의13 시립직업훈련원 부근 대지 5만여 평을 매입, 앞으로 건설될 대규모 종합사회복지관 부지로 사용키로 했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주로 생활 시설이나 단순 구호 시설만 있었지만, 1980년 ‘세계 장애인의 해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장애인복지사업의 추진 방향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정부와 서울시는 재활센터의 모델을 구상한다.
정부는 이 시기 100여 가지의 기념사업을 하게 되는 데 그중 하나가 장애인복지관 건립이었다. ‘우리나라 재활 프로그램 새로운 모델의 시작’이라는 의지를 갖고, 1979년부터 1980년 두 해에 걸쳐서 일본, 호주, 유럽의 장애인 재활 기관을 견학하고, 배우면서 장애인복지관 모델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1년 서울시는 장애인 복지사업을 위해 ‘장애인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장애인의 보호와 직업훈련 등의 복지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고, 1981년 10월, 10억 원의 예산(최종 건립 예산 13억 원)으로 복지관 착공을 했다. 참고로 본래 계획은 4월 20일에 착공에 들어가 1982년 11월 1일 개관이었다.
기사 내용 : 서울시 올해 안 21억여원 들여 3개 장애자복지시설 신설 1981.1.10 경향신문 (출처_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동아일보)
강동구 명일동5의 대지 5천평에 10억 원을 들여 연건평 1천평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3층을 오는 4월 20일에 착공 개관은 11월 1일
강동구 명일동5의 대지 5천평에 10억 원을 들여 연건평 1천평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3층을 오는 4월 20일에 착공 개관은 11월 1일
서울시는 15일 강동구 명일동에 10억 원을 들여 장애자종합복지관 신축 공사를 10월 중에 착공하기로 했다
특히 1981년, 서울올림픽과 서울패럴림픽 유치가 확정되면서 도시 계획 차원에서 장애인종합복지관 설립에 대한 기대도 한층 높아져 갔다.
한편 서울시는 장애인복지관 운영 방법에 대한 논의도 시작한다. ‘공무원이 직접 운영할 것인가? 위탁 운영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위탁 운영체제로 결정을 내린 후 당시 사회복지 영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톨릭 관련 단체를 위탁 운영 기관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운영과 김수환 추기경의 뜻
복지관은 개관 이후 지금까지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이하 본원)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복지관이 문을 열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뚫고 책임감 있게 준비해 온 본원의 땀과 김수환 추기경의 의지가 컸다.
1981년 본원은 ‘세계 장애인의 해’를 맞이하여 ‘장애인’을 위한 사도직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은 서울교구 내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기구나 시설이 없는 점을 언급하며 같은 해 ‘장애인을 위한 단 한 개의 시설이라도 신설’하기를 촉구했다. 이 일을 맡은 서울교구의 사회복지 지도 담당, 안경렬 신부는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의 안용팔 재활의학과 교수를 찾아 의논하였고, 이들은 가장 먼저 본원을 찾았다. 인력도, 재정도 부족한 현실에서 본원 입장에서 추기경의 ‘당장 시행하라’ 뜻을 따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안경렬 신부와 안용팔 교수는 ‘올해 안에 시행하라’는 김수환 추기경 뜻을 강하게 전달하였고, 그 뜻을 받은 1981년 10월 7일, ‘성모어린이집’을 개원하고, 뇌성마비아동을 조기에 발견하여 물리치료와 교육 사업을 시작한다.
기사 내용 : 성모어린이집 개원 1981.11.26 경향신문 (출처_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매일경재)
뇌성마비어린이들과 치료를 돕기 위한 성모어린이집이 서울 흑석동에서 문을 열었다. 취학전 어린이들의 뇌성마비여부를 조기에 진단, 치료하기 위해 세워진 성모어린이집은 65평 규모의 2층 건물로 통원치료 20명과 숙식 10명 등 3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치료시설과 기구를 갖추고 있다.
서울시가 복지관 운영을 위탁 운영 체제로 결정하면서 김수환 추기경은 본원을 장애인복지관 위탁 운영법인으로 건의한다. ‘성모어린이집’이 치료와 교육을 병행하는 시설을 갖추고 5세까지의 어린이를 위해 지적, 감각, 운동, 시각 등의 효과를 이용하여 물리치료를 제공하는 등 장애 아동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개관하는 장애인종합복지관이라는 모델 운영에 대한 부담과 서울시로부터 위탁 운영을 받아서 한다는 부담 때문에 운영에 망설임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인 장애인을 위한 기관이라는 설립의 순수한 뜻과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라’라는 본원의 창립 정신과 맞는 일을 찾아 나선다는 확고한 신념을 품고 복지관 위탁 운영을 결정한다.
(사진 : 복지관 개관 전 공사 중인 복지관을 둘러보는 본원 수녀와 관계자들)
위탁 운영 결정 후 개관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곳이다’라는 마음만 가지고는 될 수 없었다. 당시 장애인종합복지관은 우리나라에 없었던 새로운 장애인 재활 기관 모델이었기에 전문적인 지식과 모델이 될 만한 국내 자료가 거의 없었고, 그만큼 해야 할 일도 많았다.
당시 서울시의 사회과, 보건사회국장, 특수교육학과 교수 등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모여 운영에 대한 논의를 수차례 진행했다. 그때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다양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곳에서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미 ‘종합복지관’으로 기관 명칭이 결정된 상황에서 본원은 운영의 해법을 찾기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하였고, 회의 결과와 각 영역의 전문가의 의견 종합 정리는 안용팔 교수가 도맡아서 하면서 운영 형태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본원은 3명 인력을 파견하였고, 초대 관장으로 곽경애 요안나 수녀를 임명한다. 본원은 인력 구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당시 사회복지계에서는 전문 인력을 잘 쓰지 않는 통념을 엎고, 전문 인력의 중요성을 고려해 영역마다 전문인력을 채용하였다.
본원이 복지관을 35년 간 운영하면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예수님의 비장물을 위해 헌신’하는 창립 정신, 전문성을 갖춘 인력 그리고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정성을 결합한 운영 철학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창립 정신, 구성원, 굳건한 운영 철학 위에 우리나라 장애인종합복지관의 본격적인 역사는 시작된다.
기틀을 잡기 위한 복지관의 노력
기사 내용 : 복지시설 3개소 개관 1982.12.17 경향신문 (출처_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매일경재)
이 복지관은 상담실과 검사실, 물리치료실, 직업훈련실, 강당, 휴게실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장애자 상담 및 재활훈련을 맡게 될 이 복지관은 우선 신청자들에 대한 검진을 실시, 신체의 기능과 재활 가능성을 확인, 판정해 장애자 진료를 확실히 해 주게 된다...연간 4억 2천만원의 운영비가 지원되는 이 복지관은 재단법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에 운영한다.
위와 같이 1980년대 초 변화하는 장애인복지 패러다임 중심에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이 있었다. 이러한 변화 흐름과 복지 수요 계층 요구에 부응하는 전문 재활기관으로서 책무성과 사명감을 안고, 마침내 1982년 12월 17일 복지관은 첫 문을 연다. 여러 장애 유형과 생애주기에 맞춘 다양한 재활서비스, 지역사회의 모든 장애인이 원하는 재활서비스를 한 곳에서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새로운 모델에 대해 기대와 격려도 있었지만,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이러한 복지관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안고서 복지관은 장애인종합복지관의 기능과 역할 정립을 위해 재활욕구조사를 진행했고, ‘재활프로그램의 방향과 복지관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1983년 제1회 재활세미나를 개최하여,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기능과 역할을 정립하고 장애인 재활사업 추진의 기틀을 다진다.
정부는 3년간의 복지관의 역할과 성과를 지켜보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1986년부터 같은 모형으로 전국의 각 시·도에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1개 이상의 장애인복지관을 설립하게 된다. 2017년 8월 1일 기준, 그 수는 223개에 이른다.
자료
“명일동 5만평 매입 사회복지관 부지로” 1979.9.22. 동아일보
“장애자복지사업위 추진” 1981.3.20 동아일보
“서울시 올해 안 21억 여원 들여 3개 장애자복지 시설 신설” 1981.1.10. 경향신문
“장애자복지관 곧 착공” 1981.9.16. 동아일보
“1981년 시정결산 올림픽 유치에 따라 도시 계획 본격화” 1981.12.24. 경향신문
“복지시설 3개소 개관” 1982.12.17. 경향신문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개관 30주년 기념 영상 중 차흥봉 회장 인터뷰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이십년사, ‘꿈을 나눈 이십년, 시작의 마음으로’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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