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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홍보 20년 [개관 20년사 내용 중 발췌/2004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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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6-01 15:06 조회수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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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서 35년 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복지관이 개관하던 해를 만날 수 있고, 15년 전으로 돌리면 개관 20년사를 작성하던 순간을 만나며, 2004년 4월에 서면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20년사>을 만나게 됩니다. 20년사를 통해 볼 수 있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의 홍보 역사를 '계몽, 홍보 부분'만 발췌하여 다시 소개합니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이십년사, 꿈을 나눈 이십년, 시작의 마음으로> p176~p183 발췌

4) 계몽·홍보

 (1)계몽
 복지관에서는 직접서비스 이외에도 인식개선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해 왔다. 실시프로그램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보면 장애에 대한 이해와 인식개선, 장애의 예방, 장애이관 그 가족의 재활의욕 고취 등이다.
 오랜 시간 동안 장애계에 던져진 큰 숙제 중 하나가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인식개선 사업이다. 이러한 일들은 주로 지역사회재활팀과 기획부가 중심이 되어 역할수행을 해오고 있으며 직접 서비스 영역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그동안 시행된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우선, 다양한 인쇄 홍보자료를 제작/배포하였다. 우리 복지관에서 발행했던 인쇄물 가운데 최초의 리플릿은 역시 복지관의 사업을 소개한 관안내 리플릿이었다. '장애자는 우리 모두의 형제'라는 슬로건과 함께 복지관 중앙정원의 단아한 모습을 표지에 내세운 이 리플릿에는 복지관의 설립이념과 사업안내, 시설도, 평화의 기도 등을 담고 있다.
 한편, 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발행한 최초의 계몽 리플릿은 1984년에 제작한 '정신지체란?'이다. 이 리플릿은 당시 사회적으로 생소한 정신지체 장애에 대해 친절히 설명함으로써 장애에 대한 편견을 줄여 보자는 의도로 제작되었다. 이 자료는 외국의 리플릿을 번역해 만든 자료였다. 그 뒤로 '뇌성마비란?','정신발달이 늦은 아동과 함께 하는 하루 하루'를 잇달아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현재까지도 리플릿은 복지관 이용자와 방문객, 캠페인 PR 등에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장애의 종류는 다양하다. 이러한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사업에는 비디오 제작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선, 한국담배인삼의 후원을 받아 1996년에 제작한 '우리 친구 까치'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인기 만화가 이현세 씨(그림)외 황미나 씨(글)가 자원봉사로 참여한 작품으로 정신지체 아동인 까치의 학교생활을 통해 발달장애에 대한 비장애아동의 이해를 도왔다. 서울과 경기 지역의 초등학교에 배포되었으며 한국방송공사를 통해 전국에 방영된 바 있다. 현재도 실비로 판매하고 있으며, 아동들의 장애인식 개선 자료로 꾸준히 활용되고 있다.

 정신지체 아동에 대한 계몽 만화 제작 3년 후인 1999년에는 뇌성마비 아동인 아람이와 비장애 아동 준호의 우정을 그린 계몽도서 「우리 사이 짱이야」를 덕영재단의 후원을 받아 제작했다. 우리 친구 까치에 이어 황미나 씨(글/그림)가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신체적인 특성으로 인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이나 놀림을 당하는 사례가 이 만화책을 통해 줄어들었다는 소식은 제작에 참여한 이들에게 큰 보람을 안겨 주었다. 현재도 이 도서는 신청을 통해 무료로 보급하고 있으며 지난 1996년과 마찬가지로 2004년에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전국에 있는 초등학생들에게 보급할 예정이다. 1995년에는 중증장애인 이동을 돕기 위한 비디오/책자 '장애인 이동 이렇게 합시다'를 제작하여 보급했다. 또한, 1999년에는 보건복지부의 지원으로 발달장애인의 직업재활을 돕는 '지원고용이 보인다'를 제작하여 관련 기관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사업주에게는 발달장애인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일선 직업재활 담당자들에게는 지원고용 프로그램을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이밖에도 인식개선을 위해 매월 관보 '성지'를 발행하고 있으며 매스컴을 통한 홍보, 복지관 견학 시 방문객 교육, PR 캠페인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복지관 주변 공중들의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두 번째 목적인 장애의 예방을 위해 벌인 두드러진 활동으로 1993년에 제작한 '장애예방 이렇게 합시다'를 들 수 있다. 이 비디오는 선천적인 장애에 대한 예방을 목적으로 제작되었으며 2001년 '장애, 예방할 수 있어요.'라는 보강판이 나오기 전까지 전국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장애예방 교재로 널리 사용된 바 있다. 2002년부터는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 주관으로 장애인 주간을 이용해 장애예방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이는 시발점이 바로 '장애, 예방할 수 있어요.'의 출시였다. 이러한 캠페인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청소년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애예방교육 및 장애 체험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끝으로 장애인과 가족의 재활의욕 고취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특정 팀의 제한 없이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장애인을 둔 부모의 역량 강화를 위해 '부모기능강화프로그램', '부모대학', '어머니 심리강화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형제캠프', '우리들의 겨울여행' 등을 통해 장애형제를 둔 청소년들의 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외에도 성인장애인을 위한 시청가 자료 '가정운동법'등을 자체 제작하여 재활의욕 고취를 지원하고 있다.

 위에 기술한 바와 같이 복지관에서는 직접 서비스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는 장애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는 재활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왔으며 앞으로도 더욱 육성해 나갈 것이다.

 (2)대외홍보
 또한, 장애인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어 재활의욕을 고취하고, 복지관의 기능과 역할을 지역주민들에게 널리 알리려는 방법으로 홍보는 중요한 키워드였다.
 이에 복지관은 홍보에 관한 업무만 전담하여 처리할 담당자를 두어 이러한 역할을 수행토록 하였다.

 ① 홍보기반조성(1983년~1987년)
 복지관에서 최초로 홍보업무를 담당한 사람은 지금은 고인이 된 박마리아 선생이었다. 1982년 복지관이 문을 열고, 홍보에 필요한 필름카메라, 비디오카메라(베타), 슬라이드프로젝트, 오디오 자료 등을 구매하여 활용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는 사회 전반적으로 장애에 대해 생소했던 시기였다. 이를 타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 리플릿을 통한 홍보 방안을 마련하게 되었고, 1984년에 '정신지체란?' 리플릿을 시작으로 '뇌성마비란?', '정신발달이 늦은 아동과 함께하는 하루 하루' 등 각 장애에 대해 설명하는 리플릿을 제작하여 널리 배포하였다. 초기에 제작된 이 리플릿들은 모두 미국과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자료를 번역하여 만든 리플릿이었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로부터 장애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끌어내기도 했다.
 
 복지관은 개관 초부터 전문요원과 부모를 위한 교육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개관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부모교육과 전문요원 교육에 홍보는 빠질 수 없었다. 일일이 관련 교육 리플릿을 제작하고, 홍보 지원을 위한 보도자료 등을 제작/배포하는 일들을 빠짐없이 해냈다. 교육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1984년부터는 연구지의 교정, 표지디자인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1985년에는 홍보 담당자가 교체되어 현 (2004년 당시) 곽재복 기획실장이 홍보업무를 인수받게 된다. 이때부터 편제조정에 따른 역할 변화를 겪게 되는데, 홍보 담당자는 홍보뿐만 아니라 행정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전문성에 제한을 받을 만큼 행정 업무에 쫓겨 홍보 업무가 많은 부담을 안게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더욱 효과적인 시스템이 필요하게 되었고, 언론사 기자 관리 시스템을 이때부터 시작하였다. 불분명한 배포처 주소를 정리하고, 담당 기자 인명 리스트를 3개월, 6개월 간격으로 업데이트했다. 이로 인해 좀 더 효과적인 뉴스 배포가 가능해졌다.
 당시에는 사진 촬영 수준보다 비디오 촬영에 대한 기술이 부족했던 시기였으며, 이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주로 재활캠프 영상기록 자료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는 복지관 사업보고서인 성지 메아리의 교정 교열을 지원했으며, 1985년에는 슬라이드 프리젠테이션 기법을 도입하여 복지관을 찾는 방문객들의 이해를 시각적으로 도왔다.
 또한, 이 시기에는 캠프 참가자를 공개모집 했는데, 이를 위한 홍보문서를 관련기관에 보내고, 행사 일정 속에서는 기록지원(촬영)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1987년에는 「전국장애자복지관 편람」 발행에 편집 교정을 홍보 담당자가 진행한 바 있다. 지금과 달리 인쇄시스템의 자동화가 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당시 신혼이었던 홍보 담당자는 한 달여간 퇴근을 하지 못한 채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했다는 후일담도 전해지고 있다. 같은 해에는 개관 5주년 기념행사를 위한 자료 제작에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장애인올림픽을 준비하는 많은 인사가 복지관 시설을 참고하기 위한 방문이 이어지기도 했다.

 ② 홍보의 중흥기 (1988년~1992년)
 장애인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 말에는 전국장애인자복지관 편람 개정판을 출간했다. 또한, 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으며 장애인올림픽에서 활동할 자원봉사자들을 복지관에서 교육하기도 했다. 1989년 처음으로 복지관 안내 비디오를 제작하게 된다. 당시,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의 도움으로 제작된 이 비디오에서는 복지관 사업 소개, 이용절차 등을 담아 방문객들에게 시청각 자료로 널리 활용되었다. 이 비디오는 1990년 일부 수정 편집하여 1990대 말까지 사용하게 된다. 또한 이 해에는 청주 칼릴리집과 공동으로 정신지체아동의 부모 및 요원교육을 위한 시청각 자료 '엄마 아빠 할 수 있어' 의 제작과정에 참여해 지원하기도 했다. 1991년, '서울장애자종합복지관'에서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명칭이 변경됨에 따라 이를 알리기 위한 대외 활동에 많은 힘을 쏟았다.
 그리고 1991년부터 2년 동안은 전국 장애인복지관들이 개별적으로 실시해 온 순회진단(무료)을 장애인 주간(4월 20일 전후)에 동시에 하였다. 순회진단(무료)에는 전국에서 8개 장애인종합복지관이 참가하여 의사, 사회사업가, 심리상담가, 심리검사자, 직업상담가, 언어/물리/작업치료 등이 2일 동안 뇌성마비, 정신지체, 언어/청각장애, 정서장애 등에 대해 진단을 하였다. 아울러 우리 복지관에서 전국의 장애인복지관들을 대신해 언론과 방송에 주도적인 홍보를 하였다. 특히 당시 인기를 끌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순화진단(무료)을 소개해 331명이 진단을 받기 위해 복지관으로 몰리기도 했다. 순회진단이 있었던 4월에만 TV 3회, 라디오 10회 등 대외홍보 횟수는 27회에 달했다. 예년에 4~5회에 그쳤던 홍보횟수에 비하면 매우 바쁜 4월이었다.

 ③ 계몽비디오, 프로포절로 길을 열다(1993년~1996년)
 1993년부터는 본격적인 영상 제작 프로젝트 사업의 모습이 나타났다. 우선, 1993년도 장애인 이동을 돕기 위한 기초적인 내용을 비디오로 정리한 '장애인 이동 이렇게 합시다.'를 삼성복지재단으로부터 지원받아 1993년부터 제작에 들어갔다. 이 비디오는 1993년에 제작된 도서 「이렇게 옮겨주시면 편해요」라는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았던 1990년대 초반이어서 장애인 섭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직원들이 장애인으로 출연하는 우여곡절 끝에 제작에 착수한 지 2년 후인 1995년에 완성되었으며 1천여 곳에 무료로 배포하였다. 같은 해 '장애예방 이렇게 합시다'를 역시 후원을 통해 제작하였는데, 선천성 장애를 조금이라도 막아보자는 취지로 2,500부를 제작하여 전국의 주요 고등학교와 대학 등에 보급했다. 가임기 여성의 장애예방 교육 자료로 활용되었다.
 또한, 1995년에는 '우리 친구 까치'의 탄생으로 정신지체아동에 대한 대국민 홍보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듬해인 1996년에는 '우리 친구 까지'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서울/경기 일원의 초등학교에 무료로 배포되었다. 이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향상과 장애인 복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알릴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이 영상물은 1996년 8월, KBS TV를 통해 전국에 방영되기도 하였다. 우리 친구 까치에 대해 일부 언론사에서는 독점권을 요구했을 만큼 취재 열기 또한 뜨거웠다. 아래 표는 당시에 '우리 친구 까치'에 대해 보도한 횟수를 기록한 것이다.
중앙일간지 8회 :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장애관련신문 12회 : 장애인복지신문, 장애인신문 등
종교지 5회 :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기타 8회 : 월간 유아, 월간 소년 등
TV 5회 KBS 1TV, 특선만화 방송(1996년 8월 18일)
라디오 5회 : MBC FM 모닝쇼 등
기타 2회 : 국제만화페스티발에서 9일간 상영

 1995년에는 국내 최초로 건립되는 물치료실(현재의 수치료실)과 심리운동치료실, 중도장애인 생활훈련실 등을 포함하는 종합재활센터(현 서울리포츠센터) 건립에 대한 뉴스 릴리즈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당시 1995년말까지 완공될 것이라는 보도와 달리 2년의 세월을 더 보낸 1997년에 건물을 완공했다. 예산 부족으로 인해 후원의 손길이 더 필요했으며 당초 계획인 지하 1층, 지상2층에서 지하 1층 지상3층으로 확장 완공된 것이다. 지금은 수중재활과 감각통합 등을 더불어 실시하며 서울리포츠센터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3년 서울수중재활센터로 명칭 변경)
 1995년에는 「재활용어사전」 출간을 위한 지원의 시간을 가졌다. 영역별 용어의 다양성과 차이점을 취합, 정리하여 실무자간의 정확한 해석과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된 이 사전은 그 효용성과 국내 최초의 재활용어정리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장애 관련 일부 언론에만 소개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같은 해에 지하철 5호선이 단계별로 개통하게 됨에 따라 복지관의 접근성이 한결 좋아졌다. 지하철 내에 복지관을 안내할 수 있는 이정표와 로고와 심볼 등을 넣어 방문객이 지하철역에서 복지관을 찾아오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하지만, 지하철 개통과 함께 편의시설에 대한 장애인들의 욕구는 더욱 커졌다. 특히, 횡단보도 음향신호기, 지하철역 휠체어 리프트, 보도블록의 턱 등이 문제로 주목받았다. 당시 홍보 담당자였던 송근창 대리는 장애관련 언론사와 함께 '지하철 5호선 탑승기'라는 박스 기사를 공동으로 기획하여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보도된 기사의 헤드라인 중이 이런 글귀가 눈에 띈다.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야... 우리도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으니'.
 한편, 1995년부터는 디자인 파트가 강화되면서 홍보 담당자가 두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으며 홍보 업무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이 가능해졌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1996년에는 '우리 친구 까치' 애니메이션 제작과 시사회, 배포라는 굵직한 뉴스거리가 한해를 휩쓸었다. 본 복지관이 TV에 노출된 횟수가 전년도에 6회이었던 것에 비해 25회로 4배 이상 증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 친구 까치' 보급으로 장애유아의 통합교육에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 냈다. 현재까지도 4월 장애인 주간에는 어김없이 구매 문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비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통합에 대한 교육을 위해서는 이후에 제작된 계몽도서 '우리 사이 짱이야'와 함께 빈번히 활용되고 있다.

 ④ 보고 듣는 비디오의 시대 개막
 1996년부터 통상적이고 아마추어적이었던 촬영과 편집에서 비교적 전문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교육용 시청각 기자재를 한국담배인삼공사의 지원을 받아 설치함으로써 비디오 시대의 문을 활짝 열게 되었기 때문이다. 8mm카메라와 플레이어 간단한 A/V 믹서기, CG기 등 그동안 촬영에만 그치던 관내 시청각 교육 자료들이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쳐 좀더 세련된 화면으로 직원들이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8mm를 기반으로 하는 편집시스템은 2001년말까지 이어지게 된다.
 1997년은 복지관으로서는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앞서 언급한바 있는 서울리포츠센터가 서울 동부의 명실상부한 수중재활 전문 센터로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개관 당시에는 '종합재활센터'라는 가칭을 쓰면서 명칭에 대한 공모를 했다. 그 결과, 당시 기획연구과에서 근무하던 곽재복 차장(2017년 현재 과천시장애인복지관장)이 응모한 '서울리포츠센터'가 다른 두 편과 경합하게 되었다. 재활(Rehabilitation Center)과 스포츠(Sports)의 합성어로 직원뿐만 아니라 카피라이터 등 전문가들에게 의뢰한 결과, 서울리포츠센터로 최종 결정되었다. 당시의 보도자료에는 건물 구성과 프로그램별 소개에 대해 자세히 실어 보냈다. 기공식 전에 보였던 언론의 관심에 비해 약화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장애 관련 언론사와 공중파 등에서 관심을 표했다. 서울리로츠센터를 취재한 횟수는 1997년 한 해에 15회에 이르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서울리포츠센터를 취재한 횟수는 1997년 한 해에 15회에 이르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서울리포츠센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물에서 함께 하는 통합수영대회를 1998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9년은 두 번째 계몽만화도서 '우리 사이 짱이야'(이하 짱이야)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해이다. 짱이야 제작에 인기만화가 황미나 씨가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황미나 씨는 작화를 위해 장애인이 등장하는 비디오를 수없이 분석하기도 했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뇌성마비 아동의 발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가장 고민이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짱이야 제작은 「우리 친구 까치」(이하 까치)의 제작 경험을 살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급이 문제였다.
 까치를 서울/경기 지역에 국한하여 보급하였다면, 짱이야는 전국의 초등학교 한 반에 한 권을 목표로 전국 5,700여 개의 초등학교와 어린이 관련 기관에 모두 133,000권을 배포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급 초기부터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강동구 지역의 한 소아과에 배포하러 갔다가 문전박대당했던 일, 학교에서 포장조차 뜯지 않고 반납했던 일들은 지금도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1년 후부터는 입소문을 타고, 전화 문의가 쇄도하기도 했다. 짱이야는 현재까지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편요금만 부담하면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또한, 같은 해에 보건복지부 4대 지원 사업 중 하나로 '희망채널21, 지원고용이 보인다'를 제작하여 관련 업체와 학교 등에 무료로 보급해 지원고용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정신지체인을 비롯한 발달장애인들도 직업을 가지고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신념을 고용주들에게 심어주었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복지관의 이미지 향상을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 첫 번째는 복지관 홈페이지 개설이며 두 번째는 복지관 CI개정을 들 수 있다. 먼저 1999년 처음으로 정보팀을 구성하고, 첫 심의 안건으로 논의한 것이 복지관 홈페이지에 대한 것이었다. 정보팀과 기획부의 논의를 거쳐 도메인을 www.seoulrehab.or.kr 으로 정하고 2000년 1월에 오픈하게 된다. 오픈 당시에는 홍보파트에서 홈페이지를 관리했다. 홈페이지 오픈에 대해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홍보의 새로운 채널(통로)라는 점, 이 하나만 놓고 봐도 그 의미는 충분했다. 또한 CI의 전면 개정도 2000년에 있었다. 이미 1996년 당시 홍보담당자였던 송근창 대리가 'PR의 허와 실'이라는 사례발표에서 CIP의 중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그 결실을 2000년에 맺게 된 것이다. 서울대학교 양승춘 교수의 지휘 아래 진행된 CI의 개정은 1년이 넘는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으며 개관 이래 처음으로 진행된 대대적인 개편 작업이었다. 복지관 외관과 발행도서, 이정표, 버스, 명함 등에 사용되어 복지관의 이미지 통합과 대외 이미지 향상에 큰 효과를 가져왔다.
 2000년 3월에는 서울팝오케스트라와 함께 사랑의 음악회를 복지관 강당에서 가져 장애인과 이용자들에게 색다른 문화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지속해서 행사를 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행사였다.
 4월에는 보호작업장인 파니스 제과가 조선일보에 소개되면서 많은 이들이 파니스 제과를 알게 되었으며 방송사와 잡지사로부터 쇄도한 취재문의로 한동안 몸살을 앓기도 했다. 당시 보도자료는 파니스 제과에 대한 전반적인 모습을 짧은 수필형식으로 작성한 것이었지만, 자원봉사에 초점을 맞춰 취재가 진행되었으며 또 '자원봉사'라는 코너에 게재되었다. 하지만, 파니스 제과를 알리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파니스에 대한 문의는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2000년 9월에는 '리베라메'(양윤호 감독)라는 영화제작을 위해 서울리포츠센터를 하루 대여해 주기도 했다. 방화범과 소방관들의 머리싸움에 소방관들의 아픔을 곁들인 블록버스터 영화였다. 1980년대 말 공중파 주말드라마 제작을 위해 정기적으로 촬영 장소로 제공한 이후 처음이었다. 새벽까지 진행된 이 촬영에 최민수, 차승원, 김규리 등 쟁쟁한 스타들의 장면들이 몰려 있어 당시 이용자와 직원들에게 큰 볼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심리안정실, 감각통합실과 복도 등 서울리포츠센터 2층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이 영화는 공동경비구역이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제38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촬영상과 조명상, 편집상, 특수효과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이 밖에도 2000년, 심리치료팀에서는 독일의 심리운동 창시자인 키파드(KIPARD)교수를 초청해 심리운동특강을 열었다. 이 특강은 심리운동을 소개하는 좋은 소스로 활용되었다. 같은해, 코엑스에서 있었던 복지산업전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기도 했다. 또한, 2000년 12월부터 복지관 강당에서 지역주민과 이용자를 위한 애니메이션 상영을 시작했다. 작은 이벤트로 이용자와 지역사회 주민이 함께할 수 있는 작은 첫걸음을 뗀 것이다.
 2001년 2월에는 복지관 안내 비디오를 신규 제작하였다. 1989년에 제작된 관안내 비디오의 한계와 편제의 변화 등으로 새로운 소개 비디오가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복지관의 인력으로 기획과 구성, 촬영, 연출 등을 소화해 냈으며 편집 부분만 주로 외주로 하여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지역사회재활팀과 '편마비 장애인을 위한 운동법'이 비디오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2001년 4월에는 우리 복지관에서 직업적응훈련을 받던 장애인 부모들이 세운 두 번째 자립작업장이 설립됐다. 바로 '푸른작업장'이었다. DM업무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친 푸른작업장에 대한 기사가 파니스 제과와 마찬가지로 조선일보에 게재되었다. 이 기사는 당시 푸른작업장 담당 교사와 3개월이 넘게 푸른작업장의 개소 의미와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논의하고, 시기를 장애인의 날 보다 앞당겨 개소하는 등 의도적인 홍보의 결실이었다. 기사 게재 이후, 방송과 언론에서 8차례 보도되어 장애인 자립작업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2001년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장애, 예방할 수 있어요'를 제작했다. 언론에서 10차례 보도되기도 했던 이 비디오와 소책자는 지난 1993년의 '장애예방, 이렇게 합시다'의 전면 개정판으로 오래된 자료를 수정하고, 신규 내용을 추가했다. 전문 제작진이 촬영, 편집하여 내용의 품질을 높였다. 총 11,500부를 제작하여 전국의 고등학교와 보건소, 병원, 300인 이상 사업체 등에 배포하였다. 특히 영화배우 안성기 씨가 자원봉사로 촬영에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현재도 신청자들에게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
 2001년 말미에는 시청각 자료 제작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비선형 편집 시스템의 도입이 그것이다. 그동안 8mm 제작 시스템에서 불가능했던 각종 효과와 세밀한 편집이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화질의 열화를 줄여 양질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드디어 6mm를 기반으로 한 편집시스템으로 전환한 것이다.
 또한 자체 제작 영상물의 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2001년 한 해 동안 촬영과 편집을 한 제작 편수가 3편을 넘지 않았으나 2002년에는 9편을 제작하여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개관 20주년을 맞은 2002년에는 개관 이후의 20년을 정리한 역사비디오를 제작하여 기념식에 참석한 내외 귀빈들과 함께 시사회를 했다. 2002년 대외홍보는 모두 129건이었는데, 인물에 관한 보도가 15회로 가장 많았으며 20주년 행사가 13회 두 번째, 서울리포츠센터 프로그램 보도가 12회, 파니스제과와 관련하여 10회의 보도가 되었다. 2002년에는 대외홍보는 인물과 20주년 세미나/기념식, 수중재활프로그램 등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복지관이 문을 연지도 벌서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내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홍보의 역할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의 재활과 희망을 위한 홍보라는 점이다. 홍보는 말 그대로 널리 알리는 것이지만, 일방적인 형태가 아닌 쌍방향의 모델로 나가야 하며 모두가 참여하는 홍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또 나서는 홍보의 여정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산재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사랑과 지역사회 지향의 정신으로 나간다면 능히 그 정도의 어려움은 극복해 나갈 것이다.